‘꽃이 피다, 이름이 되다’
꽃 내음 가득한 서울의 지명

봄이 절정인 5월, 서울의 골목마다 꽃이 한창이다.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동네 이름에도 꽃이 숨어 있다.
하얀 배꽃이 흐드러지던 이화동, 복사꽃이 물들던 도화동 그리고 꽃이 핀 모양에 비유해 이름 붙인 개화동과 방화동까지.
꽃 내음 가득한 서울의 지명을 따라 도시의 시간을 걸어본다. 자료 서울역사박물관

하얀 배꽃이 흐드러지게 핀 동네

이화동
梨花洞

종로구 이화동은 배꽃 이름을 딴 정자 ‘이화정(梨花亭)’에서 유래했다. 배나무 아래 세운 정자와 그 주변을 가득 메운 하얀 배꽃에서 ‘이화정’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이것이 동명으로 이어졌다.
이화정 주변은 봄이면 눈처럼 하얀 배꽃이 흐드러졌다고 전해진다. 멀리서 보면 마치 눈이 내린 듯한 풍경이었다고 하니, 이화동은 단순한 자연 지명을 넘어 순백의 아름다움과 고요한 풍류를 담은 공간으로 기억된다.
조선 전기에 이곳은 한성부 동부 숭신방에 속했으며, 이후 여러 차례 행정 개편을 거쳐 오늘의 종로구 이화동으로 정착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이화정으로 불리다가 광복 이후 다시 이화동이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현재는 벽화마을로 알려지며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강에서도 보이는, 복사꽃 만발한 산비탈 동네

도화동
桃花洞

마포구 도화동은 복숭아나무가 많아 봄이면 복사꽃이 만발했던 모습에서 비롯됐다. 사람들은 이곳을 ‘복사골’이라 불렀고, 이를 한자로 옮겨 ‘도화동’이라 했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복사골에 김씨 노인과 그의 외동딸인 ‘도화 낭자’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하늘에서 내려온 선관들이 도화 낭자를 데려가며 복숭아씨 하나를 남겼고, 노인이 이를 심어 마을에 복숭아나무가 가득해졌다고 전해진다.
특히 이곳의 복숭아꽃은 절경으로 유명했다. 산비탈을 따라 흐드러지게 핀 분홍빛 꽃은 한강 건너 밤섬에서도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푸른 강물과 어우러진 꽃빛 풍경은 신선이 노닐던 ‘무릉도원’을 떠올리게 했다.
한편 도화동은 조선 전기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했으며, 이후 용산방과 마포계에 포함되며 행정구역이 여러 차례 개편됐다. 광복 후 1946년, 일제식 동명을 우리식으로 바꾸면서 오늘의 마포구 도화동이 됐다.

‘꽃이 핀 모양의 산’에서 이름을 딴 동네

개화동·방화동
開花洞·芳花洞

강서구 개화동과 방화동은 이 일대를 대표하는 개화산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높이 132m의 개화산은 산의 형태가 꽃이 핀 모양을 하고 있어 ‘개화(開花)’라는 이름이 붙었다.
개화산 이름을 그대로 딴 개화동과 꽃향기가 퍼지는 개화산 옆에 자리했다고 해서 지은 방화동은 모두 개화산이라는 뿌리에서 나왔다.
개화산은 꽃이 핀 모양만큼이나 봄이면 지천에 꽃이 만발해 해마다 ‘개화산 봄꽃축제’가 열렸다. 2024년부터는 이를 한층 업그레이드해 조명 연출과 다양한 볼거리를 더한 ‘강서 봄빛 페스타’로 이어지고 있다.
한편 조선 시대 이 일대는 양천현에 속했으며, 이후 김포군 등을 거쳐 1963년 서울시에 편입했고, 1977년 강서구에 속하게 되면서 오늘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