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마당

독자 에세이

극과 극

김동석(서울 동대문구)

난 어릴 때부터 모든 물건은 정해둔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라면을 끓일 때 물이 몇 방울이라도 튀면 즉시 닦아야 하고, 현관 앞 신발도 한 치의 오차 없이 가지런히 놓여 있지 않으면 참지 못한다. 이런 습관은 전적으로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다. 군 장교이셨던 아버지의 혹독한 군기 교육 중 정리정돈은 기본 중 기본이었다. 한번은 책장에 꽂힌 책 한 권이 삐딱하게 놓여 있다는 이유로 그날 저녁밥을 굶은 적이 있다. 온 집안 식구가 쓸고 닦는 일은 거의 생존과 직결되는 일이었다.

그런 내가 결혼 생활을 하면서 상상할 수 없는 혼돈에 휩싸였다. 연애 시절엔 몰랐던 아내의 생활 습관이 나와 정반대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집 안에 먼지나 머리칼이 꽤 많이 떨어졌는데도, 신발장의 신발이 뒤죽박죽인 채 널브러져 있는데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내 뒤를 따라다니면서 쓸고 또 닦았다. 우리 둘만일 때는 그래도 괜찮지만, 문제는 가끔 부모님께서 우리 집을 방문할 때다. 오시기 전 아무리 청소해봐야 집에 머물다 보면 아버지의 매 눈에 띄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

한번은 아내에게 청소가 왜 중요하며, 청소를 중요시하게 된 사연 등에 관해 얘기해줬다. 자신은 부모로부터 억압이나 통제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라서 그렇다고 답했다. 오히려 내가 청결함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 적지 않게 부담이 됐단다. 자신도 현재의 모습에서 탈피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비록 반대 방향이지만, 우리 모두 지나쳤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나의 ‘완전무결’, 가풍에서 비롯된 아내의 지나친 ‘천하태평’. 서로를 더 이해하면서 살아가기로 약속하고, 꽤 오래도록 서로를 꼭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