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풍경

최정욱(서울시 서대문구)

  • 내가 일하는 편의점은 유난히 노인 손님들이 많다.
    오래된 빌라들이 밀집한 주택가 속에 깊숙이 박혀 있어서
    그럴 것이다. 노인 손님들은 네 그룹으로 갈린다.

    첫 번째 그룹, 정말 꼭 필요한 생필품 1~2개를 사는
    손님들로, 두부나 계란 정도를 사면서 꼭 한마디씩 덧붙인다.
    “너무 비싸서 못 사겠네… 왜 이리 비싸?”
    내가 하는 말은 항상 정해져 있다.
    “한 달에 한 번씩은 가격표를 바꿀 정도로,
    물가가 오르고 있어요.”
    하지만 내 말은 들은 척 만 척이다.

    두 번째 그룹, 손주들 간식거리 사러 오는 손님들이다.
    가장 객단가가 높은 손님들로 거의 불평, 불만 없이
    평이한 손님들이다. 제일 무난한 케이스다.

    세 번째 그룹, 빈병을 팔러 오는 손님들이다. 다 팔아봐야
    3,000원 남짓인데, 이 돈으로 도대체 무엇을 하나 싶어서,
    계산기에서 돈을 내어드리면서 여쭤봤다.
    “할머니, 이 돈 3,000원으로 뭐 하세요?
    요즘 이 돈으로 할 게 있나요?”

  • 평소 대화 상대가 부족한 탓인지 할머니께서는
    술술 말씀을 하셨다.
    “3,000원을 모으면 꽤 큰돈이 돼.
    그 돈으로 반찬도 사 먹고, 손주들
    용돈도 주고 그러지.”
    지혜가 가득한 할머니의 말씀이었다.

    네 번째는 자기 명의의 집이 있다며 재산 자랑하러 오는 할아버지, 눈이 안 보인다며 전기세,
    수도세를 크게 적어달라는 할머니, 지문이 닳아서
    스마트폰 작동이 안 된다며 화면을 밝게
    해달라는 할머니다. 거의 혼자서 대화를 독점하는
    이분들은 매출에는 거의 도움이 안 된다는
    특징이 있다.

    이 많은 손님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직접 길렀다며 대파 한 단을
    선물로 주고 간, 매주 빈병을 팔러 오던
    할머니였다. 몇 번 사양했지만 기어코 주고 간
    할머니의 대파로 그날 저녁 대파국을 끓여서 먹었다.
    50대인 나도 언젠가는 머리가 희끗해지고
    눈이 침침해지고, 말이 많아지는 노인이 될 것이다.
    인생의 정답은 없다지만, 최소한 노인의
    4고(苦)인 빈고, 병고, 무위고, 고독고와는
    거리가 된 노인이 되고 싶은 것이 소원이다.
    편의점에 오는 할머니, 할아버지 손님들 모두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