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이웃의
마음까지 채우는
새로운 푸드 마켓
‘온기창고’

겨울의 찬 바람 속에서도 사람의 온기를 잃지 않게 하는 작은 공간이 있다. 서울시의 ‘온기창고’는 나눔 형식을 바꿔 쪽방촌 주민의 삶에 따뜻한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곳에서는 줄을 서지 않아도,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선택하며, 존중받는 삶의 순간을 되찾는다.

사진

김규남

줄 서지 않아도 되는 푸드 마켓

좁은 방 한 칸에서 하루를 버티는 쪽방촌 주민들에게 식사나 목욕 같은 일상은 때로 버겁기만 하다. 서울시는 이들의 삶 가까이에서 단순한 물품 지원을 넘어 존중과 자립을 돕는 복지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온기창고’다. 온기창고는 기존 후원 물품을 줄 세워 나누던 방식을 과감히 바꾼 쪽방촌 주민 맞춤형 푸드 마켓이다.
과거 쪽방촌 주민들은 후원 물품이 들어오면 하루 전부터 줄을 서야 했다. 배분 방식은 선착순이었고, 물건은 한정돼 있었다. 두세 시간씩 기다려도 원하는 물건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장애인은 줄을 설 수조차 없어 도움을 받아야 할 이들이 오히려 배제되곤 했다. 서울시는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온기창고 시스템을 도입했다.

온기창고는 계산대에서 바코드를 찍어 포인트를 차감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나눔에서 선택으로 따뜻한 변화

이곳에서는 각 지역 쪽방상담소 회원으로 등록한 주민이 가게를 방문해 매달 배정되는 포인트로 물품을 구매한다. 진열대 위에 놓인 식료품과 생필품 중 필요한 물건을 직접 선택할 수 있다.
사골육수, 즉석밥, 간식 등 먹거리부터 세제, 칫솔, 양말까지 생활에 꼭 필요한 물품이 냉장·냉동 시설을 갖춘 매장 안에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주민들은 줄을 서거나 경쟁하지 않아도 되고, 스스로 물건을 선택하며 당연한 일상의 권리를 되찾는다. 포인트 제도 덕분에 중복 수령이나 대리 배급 같은 문제가 사라졌고, 이용자 만족도는 훨씬 높아졌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주민들에게 포인트 제도는 자연스럽게 경제관념을 익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최신 세탁기와 건조기가 설치된 세탁실

주민이 일하고 함께 만드는 상생 공간

서울시는 온기창고를 단순한 나눔 공간이 아닌 지역사회 상생 거점으로 키우고 있다. 매장에서 근무하는 직원 일부는 쪽방촌 주민들로 공공 일자리 형태로 참여하는데, 단순한 일자리 제공을 넘어 자립의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물품을 진열하거나 계산을 돕는 일 외에도 주민들은 서로 안부를 묻고 소통하며 자연스럽게 관계망을 만들어간다. 최근에는 매장 내부에 커뮤니티 공간을 마련해 전자레인지, 전기포트 등에 간단히 음식을 데워 먹거나 담소를 나눌 수 있다. 내부에 갖춰진 샤워실과 세탁실은 주거 환경이 열악해 개인위생과 청결 관리가 쉽지 않은 주민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온기창고의 가장 큰 변화는 나눔의 형식을 바꾼 것에서 시작해, 사람의 마음을 바꿨다는 점이다.
“이제는 필요한 걸 직접 고를 수 있어요. 그게 참 기분 좋아요.” 한 주민의 말처럼, 복지는 물건이 아니라 마음을 전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