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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민관의 모습을 담은 사진 엽서(ⓒ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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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난방 시설까지 갖춘 최초 근대식 다목적 홀
1930년대만 해도 대규모 문화 시설을 건립할 재원을 마련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런데 1932년 경성전기회사가 기부금 100만 원(당시 쌀 80kg 가격 17.8원)을 경성부에 전달했고, 이 중 50만 원으로 부민관을 건립했다. 면적 1780평(약 5884㎡)의 부지에 세운 부민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건물로 옥탑(시계탑)의 높이는 9층에 달했다. 1800석 대강당, 400석 중강당, 160석 소강당, 담화실, 집회실 등이 있었으며 식당과 이발실도 있었다. 당시로선 드물게 냉난방 및 환기 시설까지 갖춘 한국 최초의 근대식 다목적 홀로, 1935년 12월 완공 후 경성을 상징하는 대표적 건물로 소개됐다.
당대 최고 스타들이 선 꿈의 무대
최고 시설을 갖춘 복합 문화 시설인 만큼 대부분 극단이 부민관 무대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제작할 정도로 큰 사랑과 호응을 받았다. 1937년 2월 당대 최고 무용 스타 최승희가 미국·유럽 진출을 앞두고 고별 공연을 올려 부민관은 물론 일대에 입장하지 못한 군중이 몰리는 일도 있었다. 1939년 9월에 공연된 <춘향전>은 연일 1800석이 가득 찰 정도로 대성황을 이뤘다. 음악회, 연극 등 각종 공연은 물론 좌담회, 총회, 기념식, 사교 모임, 애도식 같은 행사까지 다채롭게 활용됐다. 재밌는 점은 다른 행사에 비해 결혼식이 유독 많이 열렸다는 점이다. 신식 결혼을 올리려는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이 몰렸다고 한다.
부민관에 공연을 보러 모인 사람들(ⓒ동아일보)
문화 명소에서 지방자치 중심으로
문화와 사교의 중심지였던 부민관은 해방 이후 새로운 시대적 역할을 맡게 된다. 1945년 미국 제24군단의 극장으로 사용됐다가 1949년 6월 30일 서울시에 반환됐다. 이후 1950년 국립극장으로 쓰였다가 1954년 국회의사당, 1975년 시민회관 별관, 1976년 세종문화회관 별관으로 여러 번 쓰임새가 바뀌었다. 1991년부터는 서울시의회 본관 건물로 사용되면서 현재까지 지방자치의 상징적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