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 감성이 흐르는
서울의 철길

한때 산업화의 동맥이었던 철길이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문화를 잇는 소중한 자산으로 거듭났다. 6월 철도의 날을 맞아 기적 소리는 멈췄지만 여전히 따스한 추억과 새로운 감성이 흐르는 서울의 대표 철길 명소들을 통해 철도가 이어온 서울의 어제와 오늘을 만나보자.

주택가를 가로지르는 한적한 산책로
구로 항동철길

구로 항동철길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서 부천 옥길동으로 이어지는 약 4.5km의 항동철길은 과거 비료 수송을 위해 건설된 단선 철도였다. 이제는 기적 소리가 멈췄지만, 선로를 따라 놓인 나무 침목 위에는 ‘혼자라고 생각 말기’, ‘괜찮아 잘될 거야’ 같은 따뜻한 문구가 새겨진 채 찾아온 이들을 맞이한다. 인위적 가공을 최소화한 철길 특유의 거친 질감과 주변의 소박한 마을 풍경이 어우러져 걷는 내내 짙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철길 옆으로 나란히 펼쳐진 푸른수목원은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을 여유롭게 완성하는 공간이다. 서울시 최초 시립 수목원으로 조성된 이곳은 항동저수지를 중심으로 20여 개의 주제 정원이 꾸며져 있다. 수목원 정문이 철길과 맞닿아 있어 아날로그 감성의 철길을 산책한 후 자연스럽게 계절의 색채가 가득한 숲길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다. 푸른수목원의 생태습지와 정원을 거닐다 보면 도심 속에서 찾기 힘든 평온함을 마주하게 된다.

관람 Tip 지하철 7호선 천왕역 2번 출구에서 약 300m 이동 후, 광덕사거리 대각선 방향으로 건너면 오류동 금강수목원아파트 옆으로 철길 진입로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푸른수목원까지 약 1km 정도 산책로가 이어진다. 주소 서울시 구로구 오리로 1189

경의선숲길에서 시작되는
레드로드 발전소

경의선숲길은 연남동을 지나면서 번화가 속 인파로 넘친다. 특히 홍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이어진 구간은 오랫동안 ‘경의선책거리’라는 이름으로 사랑받아왔다. 홍대 문화의 발원지로 알려진 와우산로37길은 과거 기차가 지날 때마다 “땡땡” 소리가 울렸다고 하여 지금도 ‘땡땡거리’라는 정겨운 이름으로 불린다. 최근 경의선책거리는 ‘레드로드 발전소’라는 이름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노후 시설을 정비하고 책이라는 한정된 테마에서 벗어나 다양한 장르의 예술과 전시가 공존하는 개방형 공간으로 외연을 확장한 것이다. 선로 위 열차 모양의 부스들은 이제 문화예술 창작자들의 작업실이자 시민들과 소통하는 전시·체험 공간으로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변화 속에서도 옛 조형물과 철길의 흔적은 보존해 역사의 연속성을 지켰다. 여기에 트렌디한 예술 축제와 체험 프로그램을 더한 레드로드 발전소는 과거의 추억과 현대의 감성이 공존하는 생동감 넘치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관람 Tip 과거의 향수를 느끼고 싶다면 산책로 곳곳에 설치된 조형물과 철길의 흔적을 따라 걸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와우산로37길 35

경춘선숲길 마지막 구간
화랑대 철도공원

1939년 경춘선 개통 이후 문을 열었던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 옛 화랑대역이 화랑대 철도공원으로 운영 중이다. 옛 선로를 그대로 활용한 이 공원에는 1950년대의 미카 증기기관차와 협궤열차, 그리고 체코와 일본에서 건너온 노면전차를 전시해 방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이곳의 객차들은 단순히 관람용에 머물지 않고 레스토랑, 책방, 카페 등 시민들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돼 눈길을 끈다. 등록문화재인 옛 화랑대역사의 내부로 들어서면 과거 열차 안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소품들이 반긴다. 좁은 통로를 누비던 홍익회 직원의 카트와 그 시절 최고의 간식이었던 삶은 달걀, 사이다 등은 기차 여행의 설렘을 간직한 이들에게 짙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해가 지면 공원은 ‘노원불빛정원’으로 변신한다. 은하수 조명과 형형색색의 빛 조형물이 어우러진 야경 속을 걷다 보면 멈춰선 열차가 시민들의 웃음소리로 다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관람 Tip 정교한 미니어처 열차가 알프스 풍경 속을 달리는 노원기차마을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흥미로운 볼거리를 선사한다. 노원기차마을 광장에서는 서울시와 전국 농가가 신선한 지역 농산물을 판매하는 농부의 시장도 열린다. 주소 서울시 노원구 화랑로 608

경의중앙선이 지나가는
용산 백빈건널목

용산역 인근 빌딩 숲 사이에 자리한 백빈건널목은 기차가 지날 때마다 “땡땡” 소리와 함께 차단기가 내려가는, 서울에 몇 남지 않은 유인 철길 건널목이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촬영지로도 유명한 이곳은 거대한 현대식 빌딩과 오래된 골목이 기찻길을 사이에 두고 공존하는 독특한 경관을 자랑한다. 기차가 지나가길 기다리며 잠시 멈춰 선 사람들과 낮은 주택가 사이로 비치는 가로등 불빛은 오직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날로그 감성이다. 특히 이곳은 사진가들 사이에서 서울의 감성 야경 촬영 포인트로 손꼽힌다. 어둠이 깊어갈수록 도시의 불빛과 건널목의 붉은 신호등이 어우러져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게다가 이 일대 골목에는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노포들이 즐비해 화려한 도심과는 다른, 사람 냄새 나는 풍경을 선사한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백빈건널목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철길의 낭만을 카메라와 마음에 담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관람 Tip 지하철 1호선과 경의중앙선 용산역 1번 출구에서 도보로 약 10~15분 거리에 있다. 실제 열차가 빈번하게 운행되는 곳으로, 관리원의 안내에 따라 안전 수칙을 준수하며 관람해야 한다. 주소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7길 2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