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경성부민관 앞 거리 풍경 ⓒ 서울역사아카이브
본관 건물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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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경성부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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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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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세종문화회관 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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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서울시의회 청사
서울시의회 건물은 원래 극장이었다
현재 서울시의회 본관은 원래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지어진 다목적 공회당인 경성부민관이었다. 당시 이곳은 음악회와 연극, 강연 등이 열리던 서울의 대표적 문화공간이었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이 건물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이 층층이 새겨져 있다. 1945년 7월 24일, 광복을 불과 20여 일 앞둔 경성부민관에서는 친일 단체가 주최한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그때 행사장 안으로 폭탄 두 발이 투척됐다. 조문기·강윤국·유만수 선생이 주도한 이른바 ‘부민관 의거’였다. 일제의 패망이 임박했음을 알리고 민족의 독립 의지를 드러낸 상징적인 항거로 기록된 사건이다.
국회의사당 건물이 언제부터 서울시의회 청사가 됐을까?
서울시의회 본관은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 무대가 됐다. 1954년부터 1975년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건립되기 전까지 약 20년간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된 곳이 바로 이 건물이다. 이후 국회가 여의도로 이전한 뒤에는 세종문화회관 별관으로 활용됐으며, 서울시의회가 이곳을 정식 청사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지방자치가 부활한 1991년 제3대 서울시의회 출범 이후부터다. 오늘날 서울시의회 본관은 지방자치의 상징인 동시에 서울의 문화사와 독립운동사, 대한민국 민주주의 현대사를 품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서울시의회가 사라진 적이 있다고?
1991년 6월 20일 선거를 통해 탄생한 서울시의회와 당선자에 관한 신문 기사
서울시의회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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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9월
제1대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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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2월
제2대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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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5월
5 · 16 군사정변 후
해산
(30년 공백) -
1991년 7월
제3대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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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제12대 출범
1960년 12월 12일 제2대 서울시의회가 출범했지만, 이듬해 5·16 군사정변 직후 발표된 군사정부 포고령 제4호에 따라 서울시의회를 비롯한 전국 지방의회가 해산됐다. 지방의회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서울시의회 역시 문을 닫았다. 그렇게 시작된 공백은 30년 가까이 이어졌다. 이후 1987년 민주화의 흐름 속에서 지방자치 부활 논의가 본격화했고, 1991년 지방의회 선거가 이뤄지면서 서울시의회도 다시 시민 곁으로 돌아왔다. 오늘날 당연하게 여겨지는 지방자치는 이처럼 오랜 중단과 회복의 과정을 거쳐 되찾은 제도다.
서울시의원은 무보수 명예직이었다
서울시의원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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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대
무보수 명예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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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대(2006년) 이후
유급제
오늘날과 달리 과거 서울시의회 의원들은 월급을 받지 않는 무보수 명예직이었다. 1956년 출범한 제1대 의회부터 1991년 지방자치가 부활한 이후까지도 의원들에게는 회의가 열리는 날에만 교통비와 식대 수준의 최소 실비가 지급됐을 뿐이다. 의원들은 각자 생업을 유지하며 의정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다 출범 반세기 만인 2006년(제7대 의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매월 전문적 보수를 받는 유급제로 전환됐다. 직업 의원이 당연해진 오늘날, 초기 의정 역사의 이면에는 대가 없이 치열하게 활동했던 선배 의원들의 순수한 헌신이 있다.
한때 서울시의회 의원은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
서울시의원 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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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대(1956년)
4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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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대(1991년)
13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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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대(1995년)
14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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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대(2022년)
11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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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대(2026년)
118명
1956년 제1대 서울시의회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서울시민 대표로 본회의장에 모인 의원은 총 47명이었다. 당시 서울 인구는 약 150만 명 안팎. 하지만 한강의 기적을 거치며 서울이 거대 도시로 팽창함에 따라 의원 수도 늘어났다. 지방자치가 부활한 이후 1991년 제3대 의회에서 132명으로 늘어난 의원 수는 본격적인 전면 민선 시대가 열린 1995년 제4대 의회에 이르러 무려 147명을 기록하며 역대 최다 정점을 찍었다. 이후 선거구 조정을 거쳐 제11대 의회는 112명 체제로 운영됐으며,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출범한 제12대 의회는 118명 체제로 꾸려졌다. 시민을 대표하는 의원 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서울의 성장과 지방자치의 변화, 그리고 대표성과 효율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점을 찾아온 서울시의회의 역사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기록이다.
서울시의회 직원을 시장이 뽑았다고?
서울시의회 직원 인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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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서울시장 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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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인사권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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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서울시의회 의장 임용
2022년 1월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은 지방의회 역사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인사권 독립이다. 이전까지는 서울시의회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서울시장이 임용하고 인사권을 행사했다. 입법기관인 의회가 집행기관을 감시하고 견제하면서도 인사만큼은 행정부에 의존했던 셈이다. 법 개정 이후 서울시의회는 직접 직원을 임용하고 조직을 운영할 수 있게 됐고, 인사담당관 신설 등 독자적인 인사 체계도 구축했다. 시민들에게는 낯선 변화일 수 있지만, 지방의회가 독립적으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지방자치 발전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서울시의원에게도 정책지원관이 생기다
‘서울시의회 정책지원관 제도, 새로운 대안의 모색’ 토론회
2022년 개정된 『지방자치법』 시행으로 크게 바뀐 의회의 풍경이 하나 더 있다. 보좌진이 있는 국회의원과 달리 지방의회 의원들은 오랫동안 정책 검토와 자료 분석, 입법 지원 업무를 대부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이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2022년 『지방자치법』 개정과 함께 정책지원관 제도가 도입됐다. 정책지원관은 조례 제·개정 검토와 예산 분석, 자료 조사 등을 지원하며 의원들의 의정 활동을 돕는 전문 인력이다. 서울시의회에도 정책지원관이 배치되면서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활동이 가능해졌다. 지방의회가 한 단계 성장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된 변화였다.
무궁화부터 한글까지, 서울시의회 배지 변천사
배지 변천사
초대~2대 의회
3대 의회
4대 의회
5~9대 초 의회
현재
서울시의회 의원들이 가슴에 다는 작은 배지에는 의회의 역사가 담겨 있다. 최초의 배지는 무궁화꽃 안에 서울시 휘장을 넣은 형태로, 제1대와 제2대 의회에서 사용됐다. 이후 1991년 지방의회 부활과 함께 무궁화 형상을 현대적으로 다듬은 새로운 배지로 모습을 바꿨다. 1998년에는 입법기관의 정체성을 높이기 위해 한자 ‘議(의)’ 자를 새겨 넣으며 역대 가장 오랜 기간 시의회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2015년부터는 권위주의를 탈피하고 한글 사랑을 실천하고자 한자 대신 한글 ‘의회’를 새긴 현재의 배지가 사용되고 있다. 작은 배지 하나에 한자에서 한글로, 권위에서 소통으로 진화해온 의회의 세월이 담긴 셈이다.
50년 만에 되찾은 서울시의회 본관 시계탑
(왼쪽부터) 경성부민관 시절 시계탑, 철거 이후 본관 모습, 2023년 복원된 시계탑 (위쪽부터) 경성부민관 시절 시계탑, 철거 이후 본관 모습, 2023년 복원된 시계탑
본관 시계탑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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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경성부민관 시계탑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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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건물 보수 과정 중 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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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복원 사업으로 재건
서울시의회 본관에는 한때 시민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던 시계탑이 있었다. 1935년 경성부민관 건립 당시 설치된 시계탑은 건물의 상징이자 서울 도심의 랜드마크 역할을 했지만, 1975년 건물 보수 과정에서 철거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반세기 가까이 모습을 감췄던 시계탑은 2023년 8월 28일 복원 사업을 통해 시민들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단순히 옛 건축물을 재현한 것을 넘어 서울시의회 건물에 담긴 역사와 기억, 그리고 도시의 시간을 되찾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금도 시계탑은 서울광장을 찾은 시민들에게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다.
클릭 한 번으로 더 가까워진 서울시의회
2019년 11월 1일, 서울시의회는 공식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본격적인 온라인 소통에 나섰다. 과거에는 의회 회의를 직접 방청하거나 기록물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지만, 이제 시민들은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통해 본회의와 토론회, 시정질문 등을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게 됐다. 의회가 물리적 공간을 넘어 디지털 공간으로 확장된 것이다.
이후 영상회의록과 온라인 생중계 서비스도 꾸준히 확대하면서 시민들은 언제 어디서나 의정 활동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서울시의회 유튜브 채널 개설은 의회를 보다 개방적이고 투명한 공간으로 바꾼 상징적인 변화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2091년에 열어보세요! 서울시의회 앞마당에 잠든 타임캡슐
본관 정문 앞에 봉인된 타임캡슐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 서울시의회 본관 정문으로 가다 보면 발밑에 흥미로운 비밀이 하나 숨어 있다. 2021년 7월 8일, 서울시의회는 지방자치 부활 30주년을 기념해 본관 정문 앞 지하에 아주 특별한 타임캡슐을 봉인했다. 이 타임캡슐이 다시 빛을 보게 될 개봉 예정일은 의회 부활 100주년인 2091년 7월 8일. 무려 70년 동안 땅속에서 잠들어 있는 셈이다. 타임캡슐 안에는 오늘날 서울시민의 생생한 삶의 흔적과 의정 자료, 시대상을 반영한 다양한 물품이 밀봉돼 있다. 만약 2091년 미래 시민들이 이 캡슐을 열어본다면 스마트폰으로 조례 웹툰을 보고 1분짜리 숏폼 영상으로 소통하던 2020년대 서울시의회의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