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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리를 더 가시오”
왕십리(往十里)
왕십리는 숫자가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지명이다. 조선 초 무학대사가 새 도읍을 찾던 중 이곳에서 노인을 만나 “십 리를 더 가시오”라는 말을 들었고, 그 결과 한양이 도읍이 됐다고 한다. 이 전설 덕분에 왕십리는 서울 건국 신화의 한 장면처럼 기억된다.
게다가 실제 지명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면 더 흥미롭다. 왕십리 일대는 조선 시대 한성부 성저십리에 속한 지역이었다. 도성에서 십 리 정도 떨어진 곳이라는 의미가 지명에 반영된 것이다. 여기서 ‘십’은 수도와 주변 지역의 관계를 나타내는 공간적 기준이었다.
이후 왕십리는 도성 동쪽의 교통 요지로 성장했다. 오늘날에도 상왕십리·하왕십리 등 지명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숫자 하나에 서울의 옛 공간 질서와 역사가 담겨 있는 셈이다.
ⓒ 성동구청
1000
수천 호의 집이 들어설 만큼 번성할 땅
천호동(千戶洞)
천호동의 숫자는 조금 다르다. 이곳의 ‘천(千)’은 실제 수량이라기보다 미래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다.
이곳은 원래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 곡교리’였으나 서울에 편입되면서 ‘천호동’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풍수지리설에 따라 이곳은 훗날 수천 호의 집이 들어설 만큼 번성할 땅이라 여겨졌고, 그 믿음이 지명이 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천호동이 지역의 특성을 설명하는 이름이 아니라, 현실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염원에서 탄생한 이름이라는 사실이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천 호의 마을’을 이름으로 먼저 선언한 셈이다. 이후 천호동은 서울 동남부의 대표적 교통·상업 중심지로 성장하며 이름에 담긴 기대를 현실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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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병장수한 아홉 노인의 동네
구로동(九老洞)
ⓒ 구로구청
구로동은 이 마을에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아온 9명의 노인이 있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 ‘아홉 구(九)’와 ‘늙을 로(老)’를 써 구로(九老)라 부르게 됐다는 이야기다. 왜 하필 9명이었을까. 동아시아 문화에서 9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숫자였다. 한 자리 숫자 가운데 가장 큰 수로, 완성과 길상을 상징했다. 왕의 곤룡포에 아홉 마리 용이 새겨지고, 궁궐 곳곳에 아홉이라는 숫자가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구로동의 숫자는 노인의 수를 세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오래 살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삶에 대한 존경, 그리고 그런 사람이 많은 공동체에 대한 이상이 담겨 있다. 산업단지와 첨단산업의 이미지가 강한 오늘날의 구로동을 생각하면 그 이름에 남아 있는 전통적 가치가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