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길 따라 이어진
‘서순라길’
서순라길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의 서쪽 외곽 담장을 따라 조성된 길이다. 조선 시대 도성 안팎의 치안을 담당하고 화재를 예방하던 ‘순라청(巡邏廳)’의 군사들이 야간에 순찰하던 길이라는 역사적 배경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서울의 한복판 종로에 자리한 곳이지만, 큰길에서 한걸음 안쪽으로 비켜선 덕분에 한갓진 정취를 품고 있다. 특히 종묘를 에두른 높은 돌담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과 오래된 상업 시설, 그리고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한옥 건물의 조화가 이채롭다. 오랫동안 이곳을 지켜온 이들은 종로3가의 보석 상인들이었으나, 2010년 이후 개성 있는 주얼리 공예가들이 하나둘 터를 잡으며 감각적인 문화의 거리로 거듭났다. 서순라길이 입소문을 타면서 지금은 독특한 분위기의 음식점과 카페가 즐비해 사람들의 발길을 이끈다.
이 길의 진짜 묘미는 해가 저물면서부터 시작된다. 어둠이 내리면 은은한 가로등 불빛이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리며 운치를 더한다. 또한 서순라길의 상징인 가게 밖 ‘야장(야외 테이블)’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어스름이 깔린 뒤 불어오는 선선한 밤바람을 맞으며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골목을 가득 채우면 서순라길의 밤은 시간이 멈춘 듯 깊고 아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찾아가는 방법
지하철 1·3·5호선 종로3가역 7번 출구로 나와 도보 약 3분 거리에 있는 종묘 서쪽 담장 시작점부터 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노포의 손맛에 시원한 맥주까지
‘장충단길’
‘장충동’ 하면 족발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오랫동안 장충동에 족발골목이 자리를 지켜온 까닭이다. 원래 장충동이라는 이름은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순국한 충신들을 기리기 위해 제사를 지내던 ‘장충단(奬忠壇)’에서 비롯됐다. 일제강점기에 공원으로 용도가 바뀌었지만, ‘장충단비’(서울시 유형문화유산 제1호)가 이곳의 시간을 역사 속으로 안내하고 있다. 오늘날 장충단공원은 열대야를 피해 산책 나온 시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도심 공원으로 자리하고 있다.
장충단길은 공원 건너편 빵집 태극당에서부터 골목을 따라 이어진다. 이 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족발집이다. 장충동 족발은 6·25전쟁 직후 정착한 이북 실향민들이 고향의 ‘돼지 족조림’을 가마솥 장국에 푹 졸여 파는 방식으로 간소화하면서 시작됐다. 현재 원조1호장충동할머니집, 뚱뚱이할머니집, 평안도족발집 등이 대표적인 1세대 노포로 알려져 있다. 같은 족발이라 하더라도 가게마다 나름의 비법이 담긴 손맛을 자랑한다. 주변에 장충체육관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등이 자리해 있어 유동 인구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찾아가는 방법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2번 출구에서 남소영광장을 지나면 골목으로 길이 이어진다.
비주얼과 가성비를 원하다면?
‘샤로수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조용한 주택가. 한때 낙성대시장이 자리했으나 유동 인구가 적어 시장과 골목은 활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2010년대 초반, 독창적인 메뉴를 앞세운 음식점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것이 입소문을 타면서 약 700m에 이르는 일자형 골목을 따라 상권이 형성되자 관악구청은 이곳을 ‘샤로수길’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서울대학교 정문의 거대한 조형물 모양인 ‘샤’와 강남의 명소 ‘가로수길’을 합성한 이름이다. 최근에는 무질서하던 간판들을 깔끔하게 정비하고 골목마다 조명을 설치해 한층 밝고 쾌적해졌다. 더불어 보행자 우선 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여유롭게 산책하며 쇼핑과 야식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이곳 인기 점포들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각적 몰입감을 주는 ‘이색 메뉴’다. 고등어봉초밥, 쿠바식 샌드위치 등 이국적인 퓨전 요리부터 항아리에 담긴 티라미수 같은 독특한 디저트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젊은 소비자들이 ‘사진 찍기 좋은’ 비주얼에 기꺼이 지갑을 열고 있는 것이다. 대학가 상권의 특성을 살린 높은 가성비도 매력적이다. 일반 식사는 1만 원대, 이자카야 안주는 1만 원 중반대로 형성돼 있어 타 번화가보다 가격 부담이 적다. 점포 규모는 10~20평 내외의 아담한 형태가 주를 이룬다. 골목길 특유의 감성을 극대화한 소규모 구조가 오히려 ‘오픈런’을 유발하는 희소성으로 작용하며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찾아가는 방법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1번 출구에서 100m 지점 이정표를 따라 골목으로 진입하면 길이 이어진다.
낮과 밤이 다른 곳
‘문래창작촌’
문래동은 일제강점기에는 방직공장으로, 산업화 시기에는 소규모 철공소 밀집 지역으로 활기를 띠던 동네였다. 하지만 산업구조의 변화로 공장들이 이전하자, 그 빈자리를 젊은 예술가들이 채워가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지금의 ‘문래창작촌’이다.
문래창작촌은 낮과 밤이 다른 반전 매력을 품고 있다. 낮에는 철공소에서 쇠 깎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용접불꽃이 튀지만, 땅거미가 내려앉으면 골목 구석구석에 아기자기하고 트렌디한 카페, 루프톱 펍 등이 은은한 조명을 밝힌다.
이곳의 백미는 공장 골조를 살린 ‘인더스트리얼’ 감성이다. 차가운 철제 지붕 위에서 시원한 밤바람과 함께 와인이나 수제 맥주를 마시면 여름 더위가 단번에 가신다. 철공소 셔터의 화려한 벽화와 기발한 고철 조형물들이 밤 조명을 받아 이색적인 풍경도 놓칠 수 없다. 저녁 무렵 골목 곳곳의 자율형 갤러리에서 무료 전시를 관람하는 것도 훌륭한 야간 코스다.
찾아가는 방법
지하철 2호선 문래역 7번 출구로 나와 약 250m 직진 후 문래공원 사거리에서 안내판을 따라 골목으로 진입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