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에 뭐가 있었길래···’
동네 이름이 들려주는 옛사람들의 생업

동네 이름을 보면 그 시대상을 읽을 수 있다. 마장동, 염리동, 구파발.
무심코 지나치는 동네 이름 속에는 옛사람들의 일터와 직업, 그리고 도시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자료 서울역사편찬원 <서울지명사전>

양마장이 있던 말 관리인과 마부들의 일터
마장동 馬場洞

ⓒ 서울관광재단

마장동은 ‘말 마()’, ‘마당 장()’을 써 ‘말을 기르던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조선 초기 이 일대에는 국가에서 말을 기르던 양마장(養馬場)이 있었다. 당시 말은 군사와 교통, 공문 전달에 필수적인 국가 자산이었기 때문에 말을 사육하고 관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직업이었다. 이곳에는 말을 돌보는 관리인과 마부 등 관련 종사자들이 모여 살며 자연스럽게 마을을 이뤘고, ‘마장안’ 또는 ‘마장리’라 불리던 이름이 오늘날 마장동으로 이어졌다.
현재 마장동은 마장축산물시장을 중심으로 국내 대표 축산 유통 지역으로 성장했으며, 청계천과 왕십리 생활권을 잇는 주거·상업지역으로 발전했다. 국가의 말을 기르던 터전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서울 동북권의 생활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 서울관광재단

소금 창고가 있어 소금 장수들이 모여 살던 동네
염리동 鹽里洞

ⓒ 마포구청

염리동의 ‘염()’은 소금을 뜻한다. 지금은 폐역이 된 동막역 일대에는 예전에 소금 창고가 있었고, 이곳을 중심으로 소금을 사고파는 상인들이 모여 살면서 마을 이름도 염리동이 됐다고 전해진다. 소금 장수들은 동막에서 소금을 구해 옹기에 담아 운반하고, 나루를 통해 들어온 생선 등과 물물교환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조선 시대에 소금은 음식 보존은 물론, 국가 재정과 세금에도 중요한 생활필수품이었다. 그만큼 소금을 저장하고 운반하며 거래하는 일은 당시를 대표하는 생업 가운데 하나였다.
오늘날 염리동은 마포구의 대표적 주거지역으로 자리 잡았으며, 지명의 유래를 살린 ‘염리동 소금길’은 서울시 범죄예방디자인(CPTED) 사업의 대표 사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 마포구청

파발이 있던 파발꾼의 거점 마을
구파발 舊把撥

ⓒ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구파발은 조선 시대에 국가의 소식을 전달하던 파발이 있던 곳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파발은 긴급한 공문을 신속하게 전달하기 위해 설치한 역참이자 말이나 사람을 이용해 급한 소식을 전하던 국가의 통신 제도로, 이를 맡은 사람을 파발꾼이라 불렀다. 오늘날 우편이나 택배처럼 국가의 정보를 가장 빠르게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셈이다.
이후 새로운 파발이 설치되면서 기존 파발이 있던 이곳은 ‘옛 파발’이라는 뜻의 구파발(舊把撥), 새로 설치된 곳은 신파발이라 불렸다.
현재 구파발은 은평뉴타운이 조성되며 서울 서북권의 새로운 생활 중심지로 성장했으며,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과 북한산을 연결하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 은평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