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이름은 한 끗 차이, 품은 이야기는 제각각

묵동과 목동, 등촌동과 둔촌동

소리가 비슷해 한 번쯤 헷갈리는 동네 이름이 있다. 중랑구 묵동과 양천구 목동, 강서구 등촌동과 강동구 둔촌동이 그렇다.
발음은 닮았지만 한자를 살펴보면 전혀 다른 뜻을 품고 있는 4개 동네의 특별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자료 <서울지명사전>(서울역사편찬원)

묵동과 목동

‘먹’을 만들던 마을
중랑구 묵동 墨洞

박승진 주택공간위원장 (중랑3 · 더불어민주당) 양천구 ‘목동’이 아닙니다! 선비들의 명품 먹을 만들던 중랑구 ‘묵동(墨洞)’입니다. 이름을 혼동하는 탓에 지하철역(7호선) 이름도 ‘먹골역’이 됐죠. 충심이 맺힌 달콤한 ‘먹골배’와 봉화산의 정취가 가득하니 묵동의 찐 매력을 ‘먹’으러 오세요!

봉화산근린공원

묵동의 ‘묵(墨)’은 글씨를 쓸 때 사용하는 먹을 뜻한다. 이곳은 예로부터 ‘먹골’이라 불렸다. 먹을 만들던 마을에서 비롯된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이를 한자로 옮기면서 ‘묵동(墨洞)’이라는 지명이 자리 잡았다.
지금도 옛 이름인 ‘먹골’은 지하철 7호선 먹골역을 비롯해 지역 곳곳에 남아 있다. 오늘날 묵동에서 먹을 만들던 옛 마을의 모습을 떠올리기는 어렵지만, ‘묵’이라는 글자 하나가 이곳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던 사람들과 사라진 풍경을 기억하게 만든다.
동네 이름은 때로 마을의 오랜 시간을 간직한 가장 짧은 기록이 된다.

목(牧)에서 목(木)이 된 사연
양천구 목동 木洞

이재식 의원 (양천1 · 국민의힘) 매일 마주하는 익숙한 골목과 아파트 숲속에도 푸른 목초지에서 말이 뛰놀던 시간의 숨결이 깃들어 있습니다. 동네 이름에 담긴 역사와 이야기를 돌아보며,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목동이 주민 여러분께 더욱 정겹고 자랑스러운 터전이 되길 기대합니다.

송건우 의원 (양천2 · 국민의힘) 지금은 아파트와 학교가 자리한 익숙한 도시지만, 이름의 유래를 따라가면 말이 뛰놀고 나무가 우거졌던 옛 목동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 동네 이름에 담긴 이야기를 알아가는 즐거움이 많은 주민에게 전해지면 좋겠습니다.

파리공원 ⓒ 양천구청

오늘날 목동은 아파트와 학교, 공원이 어우러진 주거지역이다. 목동신시가지가 들어서기 전에는 논밭이 펼쳐졌고, 더 오래전에는 갈대와 목초가 무성한 침수 지대였다.
조선 시대에는 풍부한 목초를 이용해 말을 방목하면서 ‘기를 목(牧)’ 자를 쓴 목동(牧洞)이라 불렀다. 이후 부르기 쉬운 ‘나무 목(木)’ 자를 쓰면서 오늘날의 목동(木洞)이 됐다.
옛 마을의 풍경은 달라졌지만 용왕산근린공원과 파리공원, 오목공원 등 도심 곳곳에서 ‘나무 목’ 자를 떠올리게 하는 녹색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목동종합운동장 ⓒ 한국관광공사

등촌동과 둔촌동

고즈넉한 등마루가 있었던 동네
강서구 등촌동 登村洞

송순효 의원 (강서4 · 더불어민주당) 등촌동이라는 이름에 옛 지형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누가 알았을까요? 지금은 건물과 도로가 가득한 도시가 됐지만, ‘등마루’라는 이름을 통해 이곳의 예전 풍경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홍재희 의원 (강서5 · 더불어민주당) 등촌동은 이름처럼 길게 이어진 ‘등마루’ 지형의 흔적을 품고 있는 동네입니다. 오래된 주거지와 생활 문화, 한강과 가까운 입지가 어우러져 강서구의 일상과 변화를 함께 보여주는 곳입니다.

김병진 의원 (강서6 · 더불어민주당) 평소에는 자연스럽게 부르는 이름에 옛 모습이 담겨 있다는 것이 새롭게 느껴집니다. 높은 건물과 넓은 도로가 자리한 지금과 달리 예전에는 지형을 따라 마을이 형성됐다는 이야기를 알고 나니 우리 동네의 시간이 더욱 가깝게 느껴집니다.

가을음악회 ⓒ 강서구청

‘등촌(登村)’의 ‘등(登)’에는 이곳의 지형적 특징이 담겨 있다. 등촌동 일대의 옛 지명에는 등마루와 관련된 이름이 전해진다. 산이나 언덕의 마루를 뜻하는 말처럼 주변보다 높게 자리한 지형에서 마을 이름이 비롯됐다고 한다. 평평한 도심으로 바뀐 지금은 그 지형을 체감하기 어렵지만, ‘등촌’이라는 이름을 통해 옛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 등촌동은 칼국수로 유명세를 타는 강서구의 대표적 생활권으로, 그 이름을 따라가면 등마루를 따라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었던 시간도 함께 보인다.

고려 말 문신 이집(李集)의
호가 동네 이름으로

강동구 둔촌동 遁村洞

장태용 의원 (강동6 · 국민의힘) 둔촌동이라는 이름에 고려 말 문신 이집 선생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점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특히 이집 선생이 광주 이씨의 시조라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오랜 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한 둔촌동이 오늘날 많은 주민의 삶의 터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의미가 깊습니다. 지역의 유래를 아는 것이 둔촌동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키우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일자산허브천문공원 ⓒ 서울연구원

둔촌동의 ‘둔(遁)’은 ‘달아나다’ 또는 ‘세상을 피해 숨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이름의 유래에는 고려 말 문신 이집(李集)의 고단했던 시절 삶이 자리한다. 정치적 혼란을 피해 지금의 강동구 일대에 은거한 이집은 자신의 호를 ‘둔촌(遁村)’이라 지었다. 훗날 그의 호가 이 지역의 이름으로 이어지면서 오늘날 둔촌동이 됐다.
현재 둔촌동에는 둔촌주공아파트를 재건축한 올림픽파크포레온을 비롯해 대규모 주거단지가 자리하고 있다. 한 사람의 은거지였던 곳은 지금 수많은 주민의 삶터로 변했지만, 그의 호는 동네 이름으로 남아 오랜 시간을 이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