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 같이가치

동양화가 최지현
장애를 딛고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다

한때는 ‘살아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고통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불의의 사고와 함께 찾아온 장애, 다음 날 눈뜨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던 나날들, 그 깊은 절망 속에서 그를 건져 올린 것은 그림이었다. 작품을 통해 그는 다시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살아 있음을 감사하게 여긴다. 장애예술가로서 씩씩하게 자신의 길을 개척하며 장애인식개선을 위한 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는 최지현 작가의 이야기다.

최지현 화가의 에세이집

지난 연말 최지현 작가는 ‘장애인먼저실천상’을 받았다.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가 주관하는 이 상은 3년 이상 장애인식개선을 실천한 개인과 단체에 주어진다. 2018년부터 초등학교에서 장애인식개선 미술체험 교육을 진행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사장상 수상자가 되었다. 장애인식개선 강사로 장애예술인이 이 상을 받은 건 최 작가가 처음이다.

“처음에는 ‘휠체어에 탄 저 선생님이 뭘 가르칠 수 있지?’라는 시선으로 보던 아이들이 함께 미술 활동을 하면서 달라지더라고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기반 교육이라는 점에서 즐겁고, 보람 있었어요.”

경제적, 환경적 어려움 겪는 장애인예술인에 대한 지원 절실

그림과는 별다른 인연이 없었던 그를 화가의 길로 이끈 것은 장애인미술창작스튜디오다. 서울시는 2007년, 잠실종합운동장 안에 있는 중소기업 제품 판매장을 리모델링해 국내 최초 장애예술인 창작공간을 만들었다. 2010년 스튜디오를 방문해 그곳에서 작업 중인 작가들을 보며 창작의 세계에 눈을 떴다.

“작업 환경이 마땅치 않은 중증장애예술인들에게 정말 귀한 공간이었어요. 요즘은 입주 경쟁이 훨씬 치열해진 것 같아요. 창작공간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동료 장애예술인들을 보면서 경기도에서 하는 ‘장애예술인 창작공간 임대료 지원’ 같은 제도가 서울에도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중증장애인들의 이동에 꼭 필요한 게 슬로프 장착 차량인데 이들 중 상당수가 기초생활수급자예요. 이들이 2500cc 이상 차량을 구입하면 수급자 혜택을 받을 수 없어 카니발 차량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어요. 중증장애인용 슬로프 차량만큼은 이 배기량 기준에서 예외가 되는 규정이 꼭 만들어지기를 바랍니다.”

유방암 수술 이후 작품에 ‘핑크리본’ 을 함께 그린다.
붓을 손에 테이프로 고정해서 작업하는 모습

사고 20년, 화가로 다시 맞는 새로운 스무 살

최 작가는 후천적 장애인이다. 대학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하고, 나이트클럽 디제이로 화려한 삶을 살던 어느 날 추락 사고를 당했다. ‘경추손상 전신마비’ 진단을 받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그때, 그의 나이 겨우 스물여섯 살이었다.

마음의 병은 몸의 병보다 더 깊었다. 매일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해 준 건 바로 그림이었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휠체어가 이젤에 닿지 않도록 비스듬한 자세에서 그림을 그리느라 척추측만증·근육통은 일상이 되었고, 몇 년 전에는 유방암 수술도 받았다. 최근에는 한쪽 폐가 기능을 하지 못하는 무기폐 증상으로 밤에는 인공호흡기를 착용해야 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다.

그럼에도 붓을 놓지 않는다. 그림에 대한 열정은 오히려 더 강해졌다. 장애인이 된 지 올해로 20년, 스스로를 스무 살이라 부르는 그는 이 새로운 성년식을 기념하기 위한 특별한 전시회도 준비 중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자전 에세이 <아름다워서 가슴 시린 화가 최지현>을 펴냈다. 장애를 안고 화가가 되기까지의 험난한 여정, 작품 이야기 등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꾹꾹 눌러 담았다. 그리고 책 말미에 이렇게 썼다. “다시 사는 내 청춘은 부디 가슴 시리도록 아름답기.”

간절한 바람이 꼭 이루어지기를, 앞으로도 최 작가를 닮은 멋진 작품으로 꾸준히 세상과 소통하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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