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칼럼

내 옆집 무연고자의
장례를 조문하는 방법

내 옆집 무연고자의
장례를 조문하는 방법

민정혜 문화일보 기자

“오늘 잠시나마 ○○○ 님을 만나게 돼 반가웠습니다. 편안히 가세요.”

봄날치고도 화사했던 3월 27일. 일면식도 없는 두 어르신의 공동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경기도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으로 향했다. 가족이 없거나, 알 수 없거나, 가족이 있으나 시신 인계를 거부당한 ‘무(無)연고자’의 공영장례 취재가 있는 날이었다. 법률상 연고자는 배우자, 자녀, 부모, 자녀 제외 직계비속, 부모 제외 직계존속, 형제자매다. 혈연으로 묶인 이들이 없으면 사망자는 무연고자로 분류된다.

서울시의회는 2018년 광역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무연고·저소득 시민의 장례를 지원하는 「서울특별시 공영장례 조례」를 제정했다. 지자체의 공영장례 지원이 없으면 무연고자는 애도의 시간이나 의식 없이 곧바로 화장된다. 이 조례가 무연고자가 가진 생의 마지막 존엄성을 지키는 안전망인 셈이다. 서울시는 2018년 첫해 382명을 시작으로 2019년 417명, 2020년 665명, 2021년 858명, 2022년 1102명, 2023년 1218명의 장례식을 마련했다.

괜한 외로움과 쓸쓸함을 느끼며 서울시립승화원 한쪽에 작게 마련된 무연고자 장례식장 ‘그리다 빈소’의 문을 열었다. 예상과 달리 밝고 따뜻한 기운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제단 양쪽에는 촛불이 켜져 있었고, 그 사이로 탐스러운 사과·배와 몇 가지 나물 등이 올려져 있었다. 비록 영정 사진을 담는 액자는 비어 있었지만, 제단 위로 흰색 꽃들이 빽빽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비교적 간소했지만 보통의 장례식장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자를 맞이한 건 두 어르신의 마지막을 함께하기 위해 온 봉사자 2명과 서울시와 협약을 맺고 공영장례를 운영·지원하는 단체 ‘나눔과나눔’ 관계자 1명, 장례업체 직원 3명까지 모두 여섯이었다. 그 자리에 함께한 사람 중 어르신을 깊이 아는 이는 없었지만, 참석자들은 예를 다해 어르신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아무런 인연이 없는 어르신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기꺼이 쉬는 날을 할애한 직장인 봉사자에게 참석 이유를 물으니 “내가 죽을 때나 혹은 내 가족이 죽을 때 누군가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제야 공영장례는 사실 죽은 이보다 산 사람을 위한 장이라는 걸 깨달았다. 가깝게는 사망 후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없어 한쪽 벽에 나눔과나눔 번호를 크게 적어둔 쪽방촌 노인부터 멀게는 가족을 꾸리지 않겠다는 20대 청년까지 ‘예비 무연고자’는 자신의 시신을 정성을 다해 수습해줄 사람이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 또 누군가는 사실상 사회에서 배제됐던 최약자가 마지막 순간만큼은 공동체 안으로 들어온 데 대한 안도감을 느낄 수도 있다. 사회적으로는 존엄한 죽음의 하한선을 끌어올린 것에 대한 성취감을 얻을 수도 있겠다 싶다.

5월 가정의 달, 무연고자의 ‘연고자’가 돼주는 건 어떨까. ‘1365 자원봉사포털’에서 나눔과나눔을 검색해 신청하면 누구든 무연고자의 옆에 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