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기고

이효원 의원
아이 낳고 키워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

“한국인이 아이를 안 낳는 것은 출산을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출산을 선택할 권리가 없어서다.” 유엔인구기금(UN Population Fund)이 2023년 3월 발표한 ‘세계인구보고서’에서 국내의 한 연구를 인용해 지적한 부분이다. 보고서는 한국의 저출생 정책에 대해 출산권보다 출산율에 집중해 근시안적 정책을 쏟아냈다고 꼬집었다. 2006년부터 2021년까지 16년간 200조 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지만 이렇다 할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이효원 의원(비례·국민의힘)

저출산 그리고 저출생

2023년 합계출산율(가임기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은 전년(0.78명)보다 감소한 0.72명으로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저치다. 특히 서울은 2022년에 이어 광역지자체 중 가장 낮은 0.55명을 기록했다. 정부와 서울시의 저출산·저출생 정책이 통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몇 년 전, 여성계를 필두로 저출산이라는 단어를 저출생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었다.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는 저출산의 원인을 여성에게 전가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었다는 이유에서다. 지금은 저출산과 저출생이라는 단어를 모두 쓰고 있다. 출산은 오로지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권리다. 출산율이 낮아진다는 것은 여성들이 출산의 권리를 내려놓고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아이가 적게 태어난다는 의미의 저출생의 문제를 들여다보기 전에 출산의 주권자인 여성들이 왜 출산을 포기하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저출산으로 인한 사회적인 구조 변화가 시작된 만큼, 이제는 여성들이 가진 출산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저출산 대책과 저출생이라는 인구구조의 변화에 대응하는 저출생 대책을 구분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비혼·딩크족은 선택의 결과인가, 선택권 박탈의 결과인가

지난해 혼인 건수는 19만3657건으로 10년 전(32만2807건)에 비해 40% 감소했다. 청년층의 결혼에 대한 인식도 회의적이다. 13세 이상 인구 중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2012년 20.3%에서 2022년 15.3%로 감소했다. ‘결혼하는 것이 좋다’고 응답한 비율은 42.4%에서 34.8%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결혼을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고 응답한 비율은 33.6%에서 43.2%까지 늘었다.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 무자녀 가정)도 늘어나는 추세다. 2022년 신혼부부 통계 결과에 따르면 2021년 초혼 신혼부부 81만5357쌍 가운데 맞벌이를 하면서 자녀가 없는 부부는 23만4066쌍으로 28.7%에 달해 가장 많았다. 20~30대가 무자녀를 긍정적으로 보는 인식은 2015년 27.7%에서 2020년 44.1%까지 올랐다.

몇 년 전, 청년들은 ‘N포세대’라고 불렸다. 젊은 세대가 3포, 5포 세대에서 N포로 점차 더 많은 것들을 포기하는 것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다가 비혼, 딩크 등 포기를 선택하는 것이 어느덧 선택지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포기조차 젊은 세대의 선택이니 이를 사회적인 문제로 삼지 말아달라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젊은 세대의 이러한 선택이 진실로 자주적인 선택인지 우리 사회가 포기라는 선택을 하게끔 만든 책임이 없는지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불안한 내일을 기대되는 내일로 바꿔야

젊은 세대는 왜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걸까. 청년들은 미래가 불안하다. 출산을 생각하면 ‘아이의 삶과 내 삶 중에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이에게 나보다 더 좋은 삶을 물려줄 수 있을까, 내 노후도 준비가 안 됐는데 아이까지 어떻게 키워야 하나’ 등의 걱정이 앞선다. 나날이 치솟는 집값에 치열한 경쟁, 고용 불안정 속 팍팍하기만 한 삶에 불안감이 엄습한다.

평생 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지금 사회 초년생인 청년들에게 직장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고, 모아둔 자산이 적은 것은 청년이라면 자연스럽게 겪는 과정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청년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의 청년들도 똑같이 겪는다. 저출산의 기조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어지고 있지만 유독 우리나라가 심각한 저출산의 문제를 겪고 있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의 저출생 정책은 현금성 지원에 집중돼 있다. 첫만남 이용권, 아동수당, 부모급여, 양육수당 등 시기별 받을 수 있는 현금성 지원에 주목한다. 현금성 지원 역시 중요하지만, 청년들이 겪고 있는 불안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 정책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하며 정책에 대한 전달 역시 이를 바탕으로 설계해야 한다. 아이를 낳으면 국가와 사회가 아이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양육하고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데에 책임을 지겠다는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모두가 말한다. 육아는 어렵다고. 어느 구절에서 봤듯, 가치 있는 일은 힘들 수밖에 없다. 정책을 내놓기 전에 청년들이 느끼는 불안을 이해하고, 이들이 왜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하는지에 촘촘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선택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정책을 만들고 있는 우리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를 낳고 키워도 괜찮은 사회를 만들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