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당신에게 가족은 무엇입니까?

시대가 변화하면서 가족에 대한 가치관도 변하고 있다. 대가족 시대에서 핵가족 시대를 지나고, 1인가구라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과 마주하고 있다. 빛의 속도로 빠르게 바뀌어가는 요즘, 가족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보는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강학중(한국가정경영연구소 소장)

급변하는 사회만큼 가족의 기능도 변화

사회가 변화하고 세상이 바뀌면 ‘가족’도 변화한다. 만혼이 늘고, 결혼이 줄고, 출생률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3세대, 4세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은 찾아보기 어렵고 1인가구, 2인가구가 크게 늘었다. 가치관도 많이 변했다.

결혼과 자녀 출산, 노부모 부양, 이혼과 동거에 관한 생각까지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면서 갈등을 부른다. 부부관계도 양성평등적인 관계, 친밀하고 동반자적인 관계로 바뀌었다. 친족 간의 왕래는 뜸해지고 처가 중심으로 만나는 가족이 많아지면서 양계화됐다.

가족의 기능도 변화했다. 냉장고나 세탁기, 자동차에도 고유의 기능이 있듯이 가족도 고유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자녀 양육 및 사회화 기능, 경제적 기능, 사회적지위 부여 기능 등 농경사회와 비교하면 자녀 출산 기능, 생산 기능이 크게 줄고 소비 기능이 커졌다. 상대적으로 성 및 애정 기능, 정서적 안정과 지지 기능, 휴식 기능이 더욱 중요해졌다.

가족의 형태도 달라졌다. 혼인으로 맺어진 부부와 자녀가 함께 사는, 전형적인 가족의 모습(The Family)에서 다양한 가족 형태(Families)로 바뀌었다. 한부모가족, 재혼가족, 자발적 무자녀가족, 떨어져 사는 분거가족, 다문화가족, 조손가족, 입양가족, 그리고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동성애가족까지 다양해졌다.

행복한 가족의 공통점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는다. 무엇보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라고 권한다. 물론 그 시간이 얼마나 양질의 시간이고 즐거운 시간이었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함께 식사하고 집안일을 분담하며 텔레비전을 같이 보는 일상적인 시간 속에서 가족의 유대감은 깊어진다. 취미나 운동, 여행을 함께하면서 추억이라는 재산, 긍정적 감정을 차곡차곡 저축해놓으면 금상첨화다. 사소한 다툼이나 불화 앞에서도 버텨나갈 힘이 되기 때문이다.

가족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갈등을 줄여나가는 지혜도 필요하다.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거의 없거나 대화한다고 했다가 매번 싸우는 가족이 많다. 대화한다고 하는데 소통이 전혀 안 되는 가족도 있다. 어떤 문제든 대화로 풀어가자는 태도로 끊임없이 소통하고 조율해나가는 지혜는 모든 가족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문제 해결 능력도 중요하다. 행복한 가족은 문제나 갈등도 없고 부부 싸움도 안 한다고 생각하지만, 갈등이나 문제가 없는 가족은 없다. 가족이 똘똘 뭉쳐서 문제부터 해결한 다음 차분하게 책임을 묻고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행복한 가족의 공통점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남보다 뛰어나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와 달리
아무 조건 없이 무조건 사랑하고 품어주고 챙겨주는 것이 가족이다.
집(house)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따뜻하고 행복한 가정(home)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음을 명심하자.”

아무 조건 없이 사랑으로 품어주는 가족의 힘

인간에게는 혼자 살고 싶은 욕구와 더불어 살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그 두 가지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켜줄 수 있는 것이 가족 제도가 아닌가 한다. 가족은 대단히 동질적인 집단 같아 보이지만 나이 차나 남녀 차, 성장 환경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대단히 이질적인 집단이다.

내가 선택해서 결혼한 배우자이지만 30~40년 가까이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50~60년을 함께 산다는 것은 예술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렇기에 배우자와 자녀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태도가 중요하다. 바꿀 수도 없는 과거나 성격을 바꾸려고, 바꿀 필요도 없는 사소한 취향이나 습관까지도 바꿔놓겠다고 싸우며 에너지를 낭비한다면 그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다.

가족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 같지만, 공적인 영역이기도 하다. 저출생이 대표적 예인데, 결혼을 안 하고 아이를 안 낳으면 국가의 존립마저도 위협받는다. 그러므로 출산과 육아 문제를 여성 문제나 일개 가족의 문제로, 노인 부양을 효도 차원에서 풀려고 해서는 안 된다. 자녀를 귀하게 키워서 국가가 필요로 하는 국방이나 세금의 원천으로,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으로 제공하는 것이 가족이다. 출산, 육아, 노인 부양 문제가 우리 회사의 문제이고 우리 사회나 국가의 문제임을 깨닫고 장기적 안목으로 투자해야 한다.

가족을 통하지 않고 이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회의 기초 단위인 가족이 병들고 무너지면 그 사회와 국가 또한 바로 서기 어렵다. 가족과 사회는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밀접한 관계다. 모든 사회문제가 가족 문제로 비롯되는 것은 아니지만 가정폭력, 아동 학대, 가출, 이혼 등이 더 큰 사회문제로 번지고 범죄가 증가하면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부어도 해결하기 어렵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만 하면 행복한 가정이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게 아니다. 가정은 영원한 안식처요 보금자리라고 생각하지만, 열심히 물 주고 거름 주고 가꾸지 않으면 지옥 같은 가정, 원수 같은 가족이 될 수도 있다. 가족은 두 가지 얼굴을 지니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개인이나 가족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서울시가족센터나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의 문을 두드려보자. 탄생응원 프로젝트부터 아이돌봄 지원사업, 공동육아나눔터, 가족 교육, 가족 상담 등 복지 서비스가 얼마나 다양한지 절감할 것이다.

물가는 오르고 서민경제는 더 힘들어지는 데다 세계가 전쟁에 대한 공포와 기후 변화 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그럴수록 화목한 가족이 이 위기를 헤쳐나갈 힘이고 희망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남보다 뛰어나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와 달리 아무 조건 없이 무조건 사랑하고 품어주고 챙겨주는 것이 가족이다. 집(house)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따뜻하고 행복한 가정(home)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음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