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꽃피는 동네

자박자박 걸어서 마을 여행
장수마을

계절의 변화가 서울 도심 곳곳에 스민 어느 날, 한양도성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구간인 낙산 구간과 연결된 ‘장수마을’을 찾았다. 서울시 성북구 삼선교로4길 152 일대로 마을 동쪽에 한성대학교, 서쪽에 낙산의 한양도성이 자리한다.

한신 의원 (성북1·더불어민주당)

건강과 장수를 기원한다는 의미의 장수마을. 한양도성 아래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시간 여행을 온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서울의 산토리니’라고 불릴 정도로 풍경이 아름다운 이곳은 옛 산동네의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성북구의 자랑입니다. 가정의 달 5월, 가족과 함께 장수마을을 산책하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보세요.

장수마을이 있는 곳은 한양도성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다.
장수마을 표지석

시대의 흐름 따라 부침이 많았던 곳

시민 활동가들이 한 마을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마을 언저리에 있는 길 이름이 ‘장수길’이라는 데 착안해 이 마을을 ‘장수마을’이라 정했다. 흔히 알고 있는 장수촌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이 마을에도 65세 이상 노인이 대부분이라 할 만큼 어르신이 많이 살고 있으며, 그들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니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이곳에 마을이 들어선 것은 조선시대부터라고 전한다. 당시에는 ‘혜화문밖’으로 불리며 가난한 사람들이 움막을 짓고 살며 마을을 이루었다. 한국전쟁 이후 사람들이 비탈에 판잣집을 지어 살기 시작했고, 산업화 시기에는 고향을 떠나 서울로 모여든 사람들과 소외된 사람들이 더해져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췄다.

장수마을은 부침이 많았다. 1968년 무허가 주택 양성화가 된 이후 2004년 재개발예정구역으로 지정됐지만, 문화재보호구역으로 묶여 있어 사업성이 낮아 개발은 물론이고 개보수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마을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건 2008년부터였다. 시민 활동가와 청년들이 뭉쳐 마을 되살리기에 나선 것. 빛바랜 담장에 화사한 벽화를 그리고,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사랑방도 문을 열었다.

그러다 2012년 시민 활동가와 외부 전문가, 행정기관이 머리를 맞대고 ‘정든 이웃과 오래오래 함께하는 장수마을을 만들자’라는 마을재생사업을 본격화했다. 마을 외곽에 포장도로가 놓였으며, 경사가 심한 골목길에 어르신들을 위한 난간이 설치됐다. 골목에서 만난 어르신은 “마을에 도시가스가 들어온 게 불과 10년 전이다”라며 열악한 마을의 사정을 전했다. 그런데도 이 마을은 ‘서울의 산토리니’라고 불린다. 아파트와 고층 빌딩이 빽빽한 서울 한복판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생경한 풍경 덕분이다.

2012년에 조성된 벽화

다시 섬처럼 고즈넉한 마을로 돌아가다

한양도성 아래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면 ‘장수마을’이라 적힌 표지석이 있다. 성벽을 따라가면 낙산공원이고, 골목을 따라가면 장수마을이다.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싶은 마음에 성곽을 따라 걸었다. 모처럼 화창한 날씨를 즐기려고 많은 사람이 성곽을 따라 걷고 있었다. 그중 한 무리는 해설 프로그램에 참여해 한양도성에 깃든 숨은 이야기를 듣느라 정신이 없었다. 암문을 통해 한양도성에서 장수마을을 내려다봤다.

한양도성과 높은 고층 빌딩 사이에 자리한 장수마을의 모습이 마치 육지 속 섬처럼 고즈넉하다.

낙산에서 다시 마을로 발걸음을 돌렸다. 마을은 높은 성곽에서 내려다볼 때보다 훨씬 옹색했다. 두 사람이 겨우 비켜갈 정도로 좁은 골목을 중심으로 처마가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일정한 방향도 없이 제가끔 자리를 잡고 있었다. 현대 건축물의 특징인 통일감이나 규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심지어 이웃집의 담장을 자기 집 본채 벽면으로 삼기도 했고, 마당 하나를 두 집에서 공유하는 곳도 있었다. 비록 마당은 손바닥처럼 좁지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푸른 하늘이 제집 마당처럼 넓게 펼쳐졌다. 볕이 잘 드는 건물 지붕에는 장독대와 스티로폼으로 만든 텃밭이 생명을 키워가고, 대문 앞과 지붕에 화분만 수십 개가 놓인 집도 눈에 띄었다.

골목길은 미로처럼 얽혔다. 열리기도 하고 막히기도 했다. 골목 끝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그러다 기괴한 바위와 마주했다. ‘뾰족바위’라 부르는 것이다. 주민의 말에 따르면 이 일대 골목에 바위가 많아서 바위를 밟고 다녔다고 한다. 뾰족바위가 대표적인 흔적이다. 바위 꼭대기가 검게 그을린 이유는 예전에 이곳에서 당제를 지냈기 때문이다.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가파른 골목을 집배원의 오토바이가 힘겹게 오른다. 오토바이로 갈 수 있는 곳은 그나마 수월하단다. 하늘에 닿을 듯 가파른 계단은 별수 없이 뛰어오르기를 반복해야 한다고. 장수마을은 청년들이 앞다퉈 벽화를 그리던 때도 있었다. 타일을 딱지 모양으로 붙여 만든 계단, 노인과 소년 계단, 고양이 벽화 등이 모두 그때 그린 것이다. 그나마 그때는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벽화마저 색이 바래 다시 섬처럼 고즈넉한 마을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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