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만든 지방의회의 힘
자치 완성으로
지역 경제까지
살린 스위스

지방자치는 선언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지역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기 위해서는 그 중심에 있는 지방의회가 제대로 서야 한다. 스위스는 지방의회의 역할과 권한을 법으로 분명히 하며 자치의 구조를 완성해 왔다. 그 위에서 정치와 행정의 책임이 또렷해지고, 지역은 자율적인 선택으로 경쟁력을 키웠다. 지방의회가 법으로 설 때 자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스위스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지역이 먼저 결정하는 나라

만약 우리나라의 한 시군에서 지역산업을 살리기 위한 세금 조정이나 에너지정책을 스스로 결정하려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먼저 법적 근거가 있는지부터 따져야 하고, 예산은 중앙정부와 광역단체의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는 취지는 분명해도, 실제로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제한적이다. 30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지방자치에 ‘2할 자치, 3할 자치’라는 꼬리표가 붙는 이유다. 이름은 지방자치지만, 결정권은 온전히 지역에 있지 않다는 의미다.
반면, 스위스는 출발점부터 다르다. 스위스는 26개 주(Kanton)와 2000여 개 시군(Gemeinde)으로 구성된 연방국가로, 연방헌법이 지방분권을 전제로 국가 구조를 설계했다. 각 주는 주헌법과 주의회, 주정부, 주법원을 독자적으로 갖고 있으며, 주의회와 시군의회 의원은 정기 선거를 통해 선출된다. 시군은 주 법규가 정한 범위 안에서 자치권과 입법권, 조세권, 행정권을 행사한다. 만약 지역산업을 살리기 위해 세금 구조를 조정하거나 에너지정책을 바꾸고 싶다면, 스위스의 시군은 ‘해도 되는지’를 묻기보다 ‘어떻게 할 것인지’를 논의한다. 그 결정의 중심에는 지방의회가 있다. 이 차이가 정책 속도를 바꾸고, 선택의 폭을 넓히며, 지역경제의 체력을 키운다. 결국 지역이 스스로 판단할수 있는 구조가 경쟁력을 만드는 것이다.

감시 넘어 결정까지, 작동하는 의회 만들어야

스위스는 연방헌법을 토대로 구성된 연방국가다. 일부 주는 역사적 이유로 반주(Halbkanton) 형태를 띠지만, 주와 시군 모두 법적으로 자치권이 보장돼 있다. 주·시군의회 또는 주민총회를 통해 예산과 주요 정책이 결정되며, 핵심 원칙은 분명하다. 정책과 예산의 결정권이 중앙이 아니라 지방의회 또는 주민에게 있다.
지방의회는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예산을 심의·결정하며 행정이 그 결정을 제대로 이행하는지를 점검하는 핵심 기관으로 기능한다. 지역의 산업을 키울지, 복지를 강화할지, 인프라에 투자할지를 의회가 결정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주민이 평가한다. 결정한 곳이 책임지는 구조다. 지방정부는 주민의 일상과 직결된 행정을 지방의회(또는 주민총회)의 결정에 따라 집행한다. 정치 책임성은 분명해지고, 행정은 방향을 잃지 않는다. 안정적 결정 구조 위에서 정책은 신뢰를 얻고, 지역사회는 예측 가능한 행정을 경험하게 된다.
스위스가 보여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지방의회의 독립은 특정 영역의 권한을 키우는 문제가 아니라 지방자치를 제도적으로 완성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의회의 역할과 권한이 법으로 명확히 정리될 때 정치의 책임 구조가 또렷해지고, 행정은 보다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그 위에서 지역은 스스로의 여건에 맞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자연스럽게 지역 경제로 이어진다. 기업 유치와 일자리 창출, 복지정책 설계가 중앙의 획일적 기준이 아니라 지역의 판단에 따라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치란 단순한 행정 위임이 아니다. 지역이 미래를 결정하고 책임지는 구조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의 출발점은 『지방의회법』 제정이다.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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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법제연구원 <자치입법역량 강화를 위한 지방의회 입법절차 개선 연구>(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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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법제연구원 <주요 외국의 지방자치제도 연구-스위스>(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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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입법조사처 <중앙·지방정부간 사무이양 체계 및 성과에 관한 연구>(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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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연구원 <스위스에서 배우는 재정분권의 길>(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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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연방헌법, 스위스 각 주(Kanton) 관련 법령, 「주요 외국의 지방자치제도 연구: 스위스」, 대한민국 외교부·주스위스 대한민국 대사관 자료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