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성동구)
얼마 전 큰맘 먹고 대청소를 했다. 오랫동안 쓰지 않고 묵혀두었던 헌 옷, 식기, 생활용품 등을 찾아내 모두 버렸다. 어린 시절부터 특별한 이유 없이 어떤 물건이라도 버리는 것을 몹시 싫어해 옷장과 화장대, 수납장에 1년 내내 한 번도 꺼내지 않은 물건이 꽤 많이 보관돼 있었다. 버리기로 결심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한 달 내 혹은 1년 사이 내가 썼거나 혹은 쓸 물건이 있을까 생각해보니 보관하는 게 짐스럽게 느껴졌다.
혹시나 하는 물건에 둘러싸여 혹시 모를 필요에 대비하는 삶이 과연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물질의 과도한 소유나 소비, 집착으로 참된 행복과 자유가 오지 않는다는 건 지극히 평범한 깨달음이다. 수많은 물건에 철저히 포위돼 안락하고 인간다운 삶을 물건에 빼앗겨버리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인생의 목적이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한 살벌한 전쟁터가 되고 있지는 않은가.
몇 년 전부터 불필요한 물건이나 일 등을 줄이고 꼭 필요한 것만으로 살아가는 소위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최소한의 것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필요 없는 물건을 처분하거나 집을 비우고 나니 삶이 이전보다 더 여유로워지고 행복해졌다고 한다. ‘필요 없는 수많은 물건에 둘러싸인 삶이 과연 행복할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해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미니멀 라이프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정리와 버림, 비움의 미학’으로 요약되는 미니멀 라이프는 “사치의 시대가 가고, 가치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전문가의 분석과도 맥을 같이한다. 또한 전문가들은 이런 삶을 “한정된 주거 공간을 더욱 쾌적하게 탈바꿈시킬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는 과소비로 인한 환경파괴를 막는 공동체적 책임 의식의 발로”라고 설명한다. 결국 미니멀 라이프는 삶에 덕지덕지 낀 온갖 허위의식을 덜어내고 ‘주제가 있는 삶’, ‘내가 주제가 되는 삶’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아닐까. 적게 갖지만, 삶의 중요한 부분을 의미 있게 채우는 삶 즉 ‘진정한 자기 발견’이 참된 비움일 것이다. 이는 욕심을 버리고 하루하루 삶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함을 강조하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과도 유사한 맥락이다.
이젠 우리도 더욱 가치 있는 일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현대사회를 정의하는 키워드 ‘풍요 속 빈곤’은 많은 물질을 누리며 살지만, 인간은 점점 더 소외되고 물질에의 종속으로 소외는 더욱 가속화하고 있음을 뜻한다. 나도 이젠 ‘풍요 속 빈곤’이 아니라 ‘비움 속 행복’을 누리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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