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속으로기자 칼럼

잼버리 사태,
지방 시대 몰락의 전조?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파행 사태를 지방자치 무용론으로
몰아가는 건 지방균형발전에 위배될 뿐 아니라
지방자치의 대의에도 어긋난다.
이제형
(내일신문 자치행정팀 기자)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온갖 사연 끝에 마무리되고 논공행상이 요란하다. 수많은 후폭풍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지방자치의 한계와 민낯이 드러났다는 언론 그리고 중앙 정치권의 지적이다. 전북의 준비 소홀이 부각되면서 “사고는 지방이 치고 수습은 중앙정부가 한다”는 목소리가 활개를 친다. “호남이 하는 일이 그렇지 뭐”라는 퇴행적 지역감정도 이 틈을 비집고 부추긴다.

일부 지자체가 무분별하게 국제 대회를 추진해 혈세를 축내는 일이 없진 않다. 하지만 이제는 이 같은 사례가 나오기 힘들다. 지자체가 중앙정부 허락 없이 국제행사 유치 활동에 나설 수 없도록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다.

물론 전북이 잘했다는 건 아니다. 대회 장소를 갯벌 매립지로 정한 일, 기반 시설 조성이 늦어진 점 등 책임이 있다. 지방공무원의 외유성 잼버리 출장이나 지역 업체의 입찰 비리 의혹 등은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 하지만 지역에서 치르는 국제행사가 중앙정부 주도로 이뤄진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지역의 무분별한 국제행사 유치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지역발전을 위해 국제행사를 유치하려는 지자체의 노력이 모두 부정돼선 안 된다는 의미다.

권한 주지 않고 책임만 물어서야

앞뒤 상황이 이러한데 중앙정부의 잘못을 가리려고 지자체 책임론만 부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지방자치와 지방분권까지 공격하는 일은 더더욱 우려스럽다.

이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파행 사태를 지방자치 무용론 혹은 지방분권 위기론으로 몰아가는 건 지방균형발전에 위배될 뿐 아니라 지방자치의 대의에도 어긋난다. 오히려 이번 잼버리 대회는 지방정부 덕에 기사회생했다는 평가가 적절하지 않을까. 대원들의 전국 분산배치가 결정되자 지자체들이 나서 단 하루 만에 3만7000여 명의 숙소를 마련했다. 휴가를 반납한 지자체 공무원들은 숙소 내 화장실의 휴지, 비누까지 점검하고 대원들을 맞았다. 더 이상의 추락을 막기 위해 3박 4일 동안 지자체의 모든 역량을 지나치다 싶을 만큼 동원한 결과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한국의 대응은 국제사회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돌아보면 그때도 드라이브스루, 이동식 검사소,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생활치료소 등 획기적 아이디어는 모두 ‘지방’에서 나왔다. 잼버리를 계기로 중앙집권체제로 회귀를 논하는 것은 한국 사회 발전의 동력을 사라지게 만드는 퇴행이다. 잼버리 대회 평가와 잘잘못 공방이 지방자치의 의미와 가치를 훼손하는 방향이 아닌, 더욱 강화된 지방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의 내실화를 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