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속으로기자 칼럼

저출생 위기와
입법기관의 역할

권혁진
(뉴시스 기자)
“서울시의회는 다자녀 혜택의 기준을 기존 ‘세 자녀’에서
‘두 자녀’로 확대했고, 소득과 상관없이 모든 난임부부에게
시술비를 지원할 수 있는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바야흐로 지금 세계는 ‘인구 양극화 시대’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의 인구는 늘어나는 반면, 이른바 선진국으로 불리는 나라에서는 반대 현상을 보인다. 유엔(UN)에 따르면, 현재 13억 명 수준인 아프리카 인구는 2030년 20억 명에 이를 전망이다.

인구 감소는 자연스레 저출생과 맞물린다. 그 중심에는 한국이 있다.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가임기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역대 최저치인 0.78명에 그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최저치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저출생·고령화는 생산 인구의 저하와 맥을 같이한다. 여파가 지역 소멸로 번지면, 그다음은 국가의 위기다. 출생률 제고에 국가들이 목을 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내에서 출생률 기준 소멸을 향해 가장 빠르게 치닫고 있는 도시는 공교롭게도 ‘글로벌 톱 5’를 지향하는 서울이다. 인구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에겐 크게 놀랍지 않은 현실이기도 하다. 지난해 서울의 출생률은 전대미문인 0.59명으로 전국 최하위에 그쳤다.

시대가 변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일부 기성세대는 과거 당연시하던 생애주기를 기피하려는 2030세대의 태도에서 문제를 찾으려 하지만, 청년들에게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 충분한 사유가 있다. 날로 치솟는 집값과 쉽사리 감당하기 어려운 ‘억’ 소리 나는 양육비, 출산 여성에게 여전히 도사리고 있는 경력 단절 위험성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운 수준이다. 꿈쩍도 하지 않는 환경에 균열을 일으키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의 입법기관인 서울시의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고무적인 점은 서울시의회가 이러한 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자녀 혜택의 기준을 기존 ‘세 자녀’에서 ‘두 자녀’로 확대했고, 소득과 상관없이 모든 난임부부에게 시술비를 지원할 수 있는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기존 중위소득 180%라는 기준이 폐지되면서 혜택 대상자도 크게 늘었다. 정쟁을 미뤄둔 채 여야 의원들이 하나로 뭉쳐 저출생 인구절벽 대응 특별위원회도 구성했다. 모두 올해 일어난 일이다.

처참한 출생률이 말해주듯, 그동안 정부와 지자체에서 제시한 해법은 모두 실패로 귀결됐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없다면 같은 실수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진짜 위기라고 판단된다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획기적 정책과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 지금은 그래도 되는 시기다.